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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순탁 作
청자음각 연당초문표형병(c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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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지순탁 作
청자음각 연당초문표형병(cp409)
상품가 1,700,000원
판매가 1,500,000원
적립금 15,000원 (1%)
원산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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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설명 장작가마소성작품
크기 Ø16 x h32 cm(1.5kg)
작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호 도암 지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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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 지순탁 作
청자음각 연당초문표형병(c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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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순탁 作
청자음각 연당초문표형병(c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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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 지순탁(陶菴 池順鐸)의 작품과 생애

수 천년을 이어온 한국 고유의 찬란한 도자문화전통을 재현한 도암 지순탁은 9대째 관중(官中)을 드나든 중인벼슬의 집안에서 1912년 4월 30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 133번지에서 태어났다.
완고한 성품을 지닌 부모님과 신식교육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조부의 뜻에 따라 보성중학교 삼학년이 되는 해(18세) 학업을 중단했다. 이 때부터 그는 별로 하릴없이 지내야 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집안의 골동품을 모조(模造)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명색 양반집 자식이 장인 흉내를 내는 꼴이 그리 달갑지 않았으나 조부는 이런 것이라도 취미를 붙여 학교생각을 잊게 할 생각으로 못 본 척 했다. 덕분에 그는 별다른 제약 없이 근처의 골동품상들을 드나들며 쇼윈도우에 진열된 고가구와 도자기 등 우리나라 최고의 예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가세가 차츰 기울자 서대문형무소 뒤편 미근동에 새집을 마련해 거주하였는데 마침 집 뒤편에는 유명한 일본인 골동품 수집가인 아사까와 시로시아(淺川伯敎)가 살고 있었다. 당시 淺川伯敎는 일본의 근대미술비평가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와 함께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골동품을 감정하고 있었기에 서로의 집을 자주 방문하는 사이였다.
아사까와 시로시아와 친해진 덕분에 도암은 집과 박물관에 방문하여 미술품들을 둘러볼 기회가 많았는데 유구히 빛나는 한국도자문화의 전통이 단절된 것을 매우 아쉽게 여기던 이들은 우리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려주면서 그에게 한번 이를 재현해 볼 것을 권유했다. 또 이들이 우리말을 잘하지 못하는 터여서 우리나라 곳곳에 산재해 있는 가마터 등 유적지를 조사하러 나갈 때마다 통역사로 그들과 함께 동행하여 곁눈으로나마 직접 유적지와 유물을 볼 수 있었으며 이 도암의 현장발굴체험은 이에 대한 관심을 충분하였다.
이후 그는 계속해 김찬영(金贊永)을 비롯하여 인촌 김성주(仁村 金性株), 장택상(張澤相)등의 집을 찾아다니며 고려자기와 백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또한 직접 신문로의 골동품가게와 박물관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나름대로 도자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던 도중 도암은 우리 도자전통을 부흥하기 위해 아직 그 어딘가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르는 도자전통의 맥을 직접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오금리의 어느 도요(陶窯)에 정착한 그는 주변 도공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 자기를 재현해 내려 하였으나 2~3점정도 밖에는 제대로 구워진 것이 드물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두세 차례 당시 김찬영(金贊永)을 비롯한 몇몇 국내 수집가들과 아사까와 등을 두루 찾아가 그의 첫 작품을 내보였다. 모두들 도암의 의지에는 탄복하였으나 작품에는 그리 호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 원인을 흙에서 찾고 연구한 결과 1930년 그의 나이 21세에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의 도요에서 도석을 찾아냈다. 그는 여기서 중국산 고염(古染)을 이용하여 문양을 그렸고 처음으로  소나무재로 유약을 만들어 써보았다. 당시 사기요강을 굽는 가마 한 칸을 빌어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하여 실험을 하는 도중, 거금을 들이며 일용품도 아닌 골동품의 모조품만을 만드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이웃의 밀고로 주재소(駐在所)까지 끌려가는 봉변을 당하는 수모 끝에 작품을 완성해내기도 하였다.
이것이 그가 최초의 잿물을 이용한 유약을 사용 한 셈이었는데, 이 결과 나타난 작품은 바로 재유약의 개발만이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재현을 가능케 하리라는 신념을 갖게 해주었다. 이를 거울삼아 도암은 본격적으로 재유약의 개발을 위하여 전국각지의 도요나 도요지를 탐사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분원에서 일하던 노인을 찾아가 고사리재를 비롯한 식물성재유약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전통 청자재현에 가까이 가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던 도중
중일전쟁이 마침내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면서 각종 산업이 전시체제로 돌입하자 그의 도예연구생활에도 많은 제약과 영향을 미치지 시작하였다. 대동아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물자난이 극심해짐에 따라 그의 도자기 연구에도 많은 어려움이 쌓이기 시작했다. 애써 힘겹게 찾아낸 청자와 백자의 비법을 제대로 활용해 보지도 못하고 관의 눈치를 보아가며 조금씩 자기를 구워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에 만든 작품들은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되어 일본 도예계에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이즈음 받은 동경도예전에서의 두 번의 특선은 그의 명성을 확고히 다져주었다. 물론 4-5년 전에도 목공예품으로 여러 번 입상한 적이 있기를 했지만 도예가로서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마침내 도암이 ‘초목을 태운 재’를 중심으로 한 유약을 써서 최초로 고려청자를 재현해낸 것은 해방 바로 직전해인 1944년 가을이었다. 이날도 여러 종류의 초목을 태운 재를 배합하여 만든 유약으로 청자를 만들어 구웠는데, 그 중 청자향로 하나가 첫눈에 그 빛깔과 광택이 고려청자를 육박하는 우수한 것임을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과 어지러운 사회상황으로 후원자들의 후원이 미치지 못하자 도암은 변변히 작업하지 못한 채 동족상란의 비극인 6·25를 맞아야만 했다. 허겁지겁 나서서 금산에 당도한 후 피난봇짐을 풀어보니 여섯 식구의 생계가 막막하여 하는 수없이 영도다리 건너편의 공터를 빌어 조그만 가마 하나를 묻고 입에 풀칠이나 해볼 양으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당시 적십자사 총재로 재직하던 윤보선(尹潽善)씨의 소개하에 부산 제 1부두에 정박 중이던 덴마크 병원선 자드리안디아호의 사령관인 하마리크씨의 추천으로 자드리안디아호의 회의실에서 개인전을 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 마침내 전쟁이 끝나자 서울로 다시 되돌아온 도암은 곧바로 전쟁으로 파괴된 국립박물관의 목공예품 복원사업에 종사하였고. 학자들과 관계자들이 소실된 도자기문화재를 모으고 새로 도예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도자기조형미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성북동가마를 지었는데, 도암이 이 곳의 제작책임자로 발탁되어 활동할 수 있었다.해방이후 재정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점차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 도암은 1957년 경기도 이천 신둔면 수광리에 고려도요 공장을 설치, 이후 십수 년 동안 고려청자 및 조선백자의 올바른 재현에 심혈을 다 바쳐 왔으며, 후진양성에도 남다른 관심을 쏟았다. 정부의 국내외 여러 기관들로부터 많은 상패를 증정 받은 한편 국내외에서 매년 수십 차례의 전시회를 개최하여 전통도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대중화에 힘썼다. 이러한 업적들을 바탕으로 1981년에는 대한민국사회교육문화상, 1983년에는 외무부장관상과 통일부장관상, 1985년에는 평화통일문화제 특별공로상, 1986년에는 아시아평화상 등을 각각 수상했다. 특히 1984년에는 미국의 유니온 대학에서 명예미술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8년 이래 국가에 의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93년 작고하였다.

출처: 한국도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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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이 있어요. 도자기 흙 안의 철 성분이 점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특히 분청의 흙느낌이 나는 점은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부분으로 불량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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